살아남은 자의 소회
말도 안되는 하락장에 이어서 다시 말도 안되는 회복장이 진행중이다. 추가로 하락한다는 의견도 많이 보여 내가 살아남았다는 확신이 아직까지는 들지는 않지만, 아무튼 이번 하락장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빠른 하락
20년 2월말 단순 조정이라고 생각했던 시장은 급하게 하락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3월, 단 한 달 사이에 280에서 200까지 하락하였다. 시장에 넘치는 유동성과 19년 몇번에 조정을 이겨내고 장기 상승선으로 올라섰던 주가추세를 보고 나도 모르게 상승을 확신했던 것 같다. 250미만으로는 하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었고, 속도도 무척 빨랐기 때문에 내 포지션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과했고 이미 260선에서 19년 수익을 전부 뱉어내고 일억원 정도 손실이 난 상태였다.
3월 10일
3월 10일로 기억하는데 전일 미국시장이 갭하락하였음에도 비교적 한국 시장은 선방해줬고, 나는 그 틈을 타서 기존 포지션을 모두 청산할 수 있었다. 풋옵션 매도 포지션이 있었기 때문에, 급하게 선물을 매도하여 스퀘어 포지션을 겨우겨우 맞출 수 있었다. 만약 10일 큰 폭의 하락이 있었더라면 나는 대용증권이 모두 반대매매되어 시장에서 퇴출당했을 것이다. 그냥 운이 좋았다.
모든 것을 잃은 뒤
이후부터는 콜을 매도하면서 시장의 움직임을 관망했다. 시장의 변동성이 높았기 때문에 옵션의 프리미엄이 엄청났고, 260에서 200까지 하락하는 동안 그래도 어느정도 손실을 좀 만회할 수 있었다. 하지만 3/24, 25일 시장이 상승으로 급하게 돌아서면서 나는 애써 매도해온 콜옵션을 급하게 매도해야 했다. 당시는 장중 증거금을 인상할 정도로 시장 변동성이 극심했기 때문이다. 좀 더 자본이 많았더라면 더 버틸 수 있었을텐데, 어쩔 수 없었다.
회복장에서
4월 이후에는 하락장의 트라우마 속에서도 조금씩 선물을 매수하며 콜을 매도하는 커버드콜 포지션을 잡았다. 일중 변동성도 컸고 하락에 대한 두려움이 컸기 때문에 진득하게 포지션을 잡을 수가 없었다. KOSPI200이 240정도로 상승했을 때 비로소, 포지션을 유지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리스크관리가 전부
19년과 20년 장을 돌아보면 상승하더라도 급하게 롱포지션을 늘려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주로 사용하는 커버드콜 포지션의 특성상 주가가 상승할 때, 수익증대를 위해 포지션을 늘렸다. 하짐나 롤오버를 할 때, 늘린 포지션을 그대로 유지했었다. 그 때문에 19년 말에 수익이 엄청나게 늘어나기도 했지만 20년 3월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하기도 했다. 주가가 이렇게 주기적으로 조정을 받는다면 어쩌면 포지션을 무리하게 늘리기보다 조정을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닌가 싶다. 비록 기다리는 조정이 오지 않더라도 이번처럼 실려갈 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증거금만 충분했다면, 이번과 같은 조정장에서 단순히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기회로 삼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비록 그 기회가 10년에 한번올까말까 하더라도...
분산, 분산, 분산.
나는 이번 조정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정리해보면 우선 운이 좋았다. 나를 응원해 주는 신의 존재를 믿을 만큼 절묘했다. 둘째는 계좌를 나눔으로써 나도 모르게 리스크관리가 되었다. 급격한 하락시에 흩어져있던 주식을 모아서 반대매매를 그래도 피할 수 있었다. 이제 계좌가 정상화된다면, 선물 계약수는 내 기준하에서 고정하고 매달 수익은 채권을 모으는데 사용해야 겠다. 선물옵션을 하는 입장에서 주식:채권 비율을 유지하며 리밸런싱하는 전략이 사실 우스워보였는데, 3월의 안절부절 못하던 밤을 생각하면 그것만이 답인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부동산으로도 반드시 분산을 해야겠다.
끊임없이 불안해하라
지난 19년 8월 조정장에서 살아남은 뒤, 시장의 상승에서 나는 엄청난 자기확신을 가지고 매매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독이었던 것 같다. 나는 19년 무역분쟁이 10년만에 한번 찾아온다는 위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19년 초에 있었던 장단기 금리차 역전이 저금리 시대에 올 수 있는 현상으로 치부했다. 이름난 사람들도 어느 순간 사라지는 것이 선물옵션시장 아니겠는가? 내 무지함을 잊지말고 끝없이 불안해하고 의심하는 것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